티스토리 뷰

일본 아스카 시대

개요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あすかじだい)는 일본 역사에서 고훈 시대의 뒤를 이어 나타난 시기로, 대략 6세기 말(592년)부터 8세기 초(710년)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대의 명칭은 당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나라현의 아스카(飛鳥) 지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스카 시대는 불교가 국가적으로 수용되고 융성하면서 일본 문화의 기틀이 마련된 중요한 시기이며,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중앙집권적인 율령 국가 체제를 확립해 나간 변혁기이기도 합니다.

시기

아스카 시대의 시작은 스이코 천황(推古天皇)이 즉위한 592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한 710년까지를 그 범위로 합니다. 다만, 학자에 따라서는 645년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아스카 시대, 이후를 하쿠호 시대(白鳳時代)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고대 국가 형성의 마지막 단계이자 새로운 시대인 나라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닙니다.

  • 일반적인 구분: 592년 (스이코 천황 즉위) ~ 710년 (헤이조쿄 천도)
  • 세부 구분 (일부 학설):
    • 아스카 시대 (좁은 의미): 592년 ~ 645년 (다이카 개신 이전)
    • 하쿠호 시대: 645년 ~ 710년 (다이카 개신 이후)

주요 특징

  • 불교의 국교화 및 융성: 백제 등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불교가 국가의 보호 아래 크게 발전하며, 사찰 건축과 불상 제작이 활발해졌습니다. 이는 일본 고대 문화의 핵심을 이루게 됩니다.
  •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의 정치: 스이코 천황의 섭정으로서 관위 12계(冠位十二階) 제정, 17조 헌법(十七条憲法) 제정, 견수사(遣隋使) 파견 등을 통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불교를 장려했습니다.
  •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中大兄皇子, 후의 덴지 천황)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 후의 후지와라노 가마타리) 등이 소가(蘇我)씨 본종가를 타도하고 단행한 정치 개혁으로,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등 율령 국가 체제를 지향했습니다.
  • 율령(律令) 국가 체제의 정비: 중국의 율령 제도를 모방하여 국가 통치 규범인 율(형법)과 령(행정법 등)을 제정하고 시행했습니다. 아스카키요미하라령(飛鳥浄御原令), 다이호 율령(大宝律令) 등이 대표적입니다.
  • 대륙 문화의 적극적 수용: 견수사 및 견당사(遣唐使) 파견을 통해 중국의 선진 제도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반도 국가들과도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습니다.
  • 천황(天皇) 칭호와 일본(日本) 국호 사용 시작 (추정): 이 시기에 '오키미(大王)'에서 '덴노(天皇)'로 군주의 칭호가 바뀌고, 국호로 '일본'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 아스카 문화와 하쿠호 문화: 초기에는 불교 전래와 함께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아스카 문화가 발달했고, 후기에는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국제적 성격의 하쿠호 문화가 꽃피웠습니다.

불교 문화의 융성

아스카 시대는 일본 불교 문화가 처음으로 꽃피운 시기입니다. 6세기 중반 백제를 통해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 초기에는 수용을 둘러싸고 소가씨와 모노노베씨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불교를 옹호한 소가씨가 승리하면서 국가적으로 불교가 장려되기 시작했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며, 이는 아스카데라(飛鳥寺, 호코지), 시텐노지(四天王寺), 호류지(法隆寺) 등 대규모 사찰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찰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불상 제작 기술도 발달하여, 구리바 도리(鞍作止利)와 같은 전문 불상 제작 장인(仏師)이 등장했으며, 아스카 대불, 호류지 금당 석가삼존상 등 초기 불교 조각의 걸작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쇼토쿠 태자의 정치 (聖徳太子の政治)

쇼토쿠 태자(574년 ~ 622년, 우마야도 왕자厩戸皇子)는 스이코 천황의 조카이자 섭정으로서 아스카 시대 전기의 정치를 이끌었던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불교를 깊이 신봉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자 했습니다.

  • 관위 12계 (603년): 가문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공적에 따라 관직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로,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 천황 중심의 관료제를 확립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 17조 헌법 (604년): 관리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 정치적 규범을 17개 조항으로 제시한 것으로, 화(和)를 중시하고 천황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성문법적 성격을 지닌 규범으로 평가됩니다.
  • 견수사 파견: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 등을 중국 수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대등한 외교 관계를 모색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는 국서는 유명합니다.
  • 불교 진흥: 호류지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건립하고 불교 경전 연구를 장려하는 등 불교를 통해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꾀했습니다.

쇼토쿠 태자의 이러한 정책들은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다이카 개신 (大化改新)

다이카 개신은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가 중심이 되어 당시 외척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와 그의 아버지 소가노 에미시(蘇我蝦夷)를 제거한 을사의 변(乙巳の変) 이후 단행된 일련의 정치 개혁입니다. 연호를 '다이카(大化)'로 정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주요 개혁 내용은 다음과 같은 '개신의 조(改新の詔)'로 발표되었습니다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란도 있음):

  •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 모든 토지와 백성은 천황에게 속한다는 원칙을 확립하여 호족들의 사적 지배를 폐지하고자 했습니다.
  •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사망 시 국가에 반납하게 하는 제도로, 국가의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목표로 했습니다.
  • 조용조(租庸調) 제도: 토지세(租), 인두세(庸), 특산물세(調)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 지방 행정 제도 정비: 전국을 구니(国), 군(郡), 리(里)로 나누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체제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다이카 개신은 즉각적으로 모든 개혁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일본이 중앙집권적인 율령 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율령 국가로의 발전

다이카 개신 이후 일본은 중국의 율령 체제를 모델로 하여 국가 통치 시스템을 정비해 나갔습니다. 율(律)은 형법에 해당하고, 령(令)은 행정법, 민법, 소송법 등을 포함하는 규범입니다.

덴무 천황(天武天皇)과 지토 천황(持統天皇) 시기에 율령 편찬 작업이 본격화되어, 689년경에는 아스카키요미하라령(飛鳥浄御原令)이 시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체계적인 율령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이를 더욱 발전시켜 701년에는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이 완성되었습니다. 다이호 율령은 2관(신기관神祇官, 태정관太政官) 8성(省)의 중앙 관제와 지방 관제를 규정하고, 관료 제도, 조세 제도, 군사 제도 등 국가 운영의 전반적인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명실상부한 중앙집권적 율령 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는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고대 국가의 기본 골격이 되었습니다.

문화와 예술

아스카 시대의 문화는 크게 전기 아스카 문화와 후기 하쿠호 문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아스카 문화 (6세기 말 ~ 7세기 전반):
    • 불교 전래 초기의 문화로, 한반도, 특히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 대표적인 사찰 건축으로는 호류지, 아스카데라 등이 있으며, 소박하면서도 힘찬 느낌을 줍니다.
    • 불상 조각에서는 구리바 도리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북위 양식의 영향이 엿보이며, 호류지 금당 석가삼존상, 아스카 대불 등이 유명합니다.
    • 회화로는 호류지 다마무시노즈시(玉虫厨子)의 장식 그림 등이 남아 있습니다.
  • 하쿠호 문화 (7세기 후반 ~ 8세기 초):
    • 다이카 개신 이후 당나라 문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의 문화입니다.
    • 불교 미술은 더욱 세련되고 국제적인 양상을 띠며, 인체 표현이 사실적으로 변하고 부드러운 곡선미가 강조됩니다.
    • 대표적인 사찰로는 야쿠시지(薬師寺) 동탑(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음), 불상으로는 고후쿠지(興福寺) 불두, 야쿠시지 금당 약사삼존상 등이 있습니다.
    • 고분 벽화로는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 기토라 고분 벽화 등이 이 시기 또는 직후의 것으로, 당나라 인물화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와카(和歌) 형식의 시가 문학도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일본어를 표기하는 만요가나(万葉仮名)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 유적 및 사찰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유적과 사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스카쿄 유적 (飛鳥京跡, 나라현 아스카무라): 스이코 천황의 오하리다노미야(小墾田宮)를 비롯하여 역대 천황들의 궁궐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 호류지 (法隆寺, 나라현 이카루가정): 쇼토쿠 태자가 건립한 사찰로, 금당, 오층탑 등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군이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아스카 문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아스카데라 (飛鳥寺, 또는 호코지法興寺, 나라현 아스카무라):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가 창건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로, 아스카 대불(석가여래좌상)이 유명합니다.
  • 시텐노지 (四天王寺, 오사카부 오사카시): 쇼토쿠 태자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중 하나입니다.
  • 야쿠시지 (薬師寺, 나라현 나라시): 덴무 천황이 황후(후의 지토 천황)의 병세 회복을 위해 창건을 발원한 사찰로, 특히 동탑은 하쿠호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동탑은 재건).
  • 다카마쓰즈카 고분 (高松塚古墳, 나라현 아스카무라): 극채색의 벽화(사신도, 인물 군상 등)가 발견된 고훈 시대 말기 또는 아스카 시대의 고분입니다.
  • 기토라 고분 (キトラ古墳, 나라현 아스카무라): 사신도와 천문도 등 정교한 벽화가 발견된 고분입니다.
  • 이시부타이 고분 (石舞台古墳, 나라현 아스카무라): 거대한 석실이 노출된 형태로 남아 있는 고분으로,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