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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요이 시대 (弥生時代)

개요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やよいじだい)는 일본 열도에서 조몬 시대에 이어 나타난 시대로, 일반적으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 중반까지로 여겨집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로부터 벼농사 기술과 금속기(청동기, 철기)가 전래되어 일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야요이'라는 명칭은 1884년 도쿄도 분쿄구 야요이 지구에서 특징적인 토기가 처음 발견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시기

야요이 시대의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습니다. 종료 시점은 고훈 시대가 시작되는 3세기 중반경으로 봅니다. 야요이 시대는 토기의 양식 변화 등을 기준으로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뉩니다.

  • 전기: 기원전 10세기 ~ 기원전 1세기경
  • 중기: 기원전 1세기경 ~ 기원후 1세기경
  • 후기: 기원후 1세기경 ~ 기원후 3세기 중반

이 시기 구분은 연구자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특징

  • 벼농사의 시작과 보급: 본격적인 논농사가 시작되어 식량 생산량이 크게 증대되었고, 이는 인구 증가와 정주 생활의 확립으로 이어졌습니다.
  • 금속기의 사용: 한반도를 통해 청동기와 철기가 거의 동시에 유입되었습니다. 청동기는 주로 제기(祭器)나 무기 형태로, 철기는 실용적인 농기구나 공구,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 야요이 토기: 조몬 토기에 비해 문양이 단순하고 실용적인 형태의 얇고 단단한 토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저장, 조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 사회 계층화와 소국(小國)의 형성: 농경 발달과 생산력 증가는 잉여 생산물을 낳았고, 이는 빈부 격차와 신분 차이를 발생시켰습니다. 점차 유력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 집단, 즉 '구니(クニ)'라고 불리는 소국들이 각지에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환호 취락의 등장: 방어 시설인 해자(垓字)나 목책(木柵)을 두른 환호 취락이 나타나, 집단 간의 갈등이나 전쟁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사회 변화

벼농사의 도입은 야요이 시대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는 인구 부양력을 높였고, 이는 취락의 대규모화와 밀집화를 촉진했습니다. 농경을 위해서는 관개시설의 관리, 공동 노동 등이 필요했기 때문에 집단 내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생산력의 차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켰고, 특정 가문이나 개인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신분 질서의 형성으로 이어졌으며, 강력한 지도자는 제사권을 장악하고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여 소국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에는 당시 일본 열도에 많은 소국들이 존재했으며, 야마타이국(邪馬台国)의 여왕 히미코(卑弥呼)가 이들 연맹체의 맹주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야요이 토기 (弥生土器)

야요이 토기는 조몬 토기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지닙니다. 조몬 토기가 화려하고 복잡한 새끼줄 무늬를 가진 반면, 야요이 토기는 대체로 무늬가 없거나 단순한 선, 점 등으로 간결하게 장식되었습니다. 또한,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비교적 얇고 단단하며, 붉은색이나 갈색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요 형태로는 음식 저장용의 항아리(壺), 조리용의 독(甕), 음식을 담거나 제사용으로 쓰인 대접(鉢)이나 고배(高杯) 등이 있습니다. 야요이 토기의 양식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며, 이는 야요이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도구와 기술

야요이 시대에는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도입되어 다양한 도구가 제작되었습니다.

  • 석기: 조몬 시대의 타제석기와 함께 마제석기가 발달했습니다. 벼 이삭을 자르는 반월형 석도(石刀), 나무를 가공하는 마제석부(磨製石斧), 화살촉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 목기 및 농기구: 나무로 만든 괭이, 쟁기, 따비 등의 농기구가 사용되었으며, 관개 시설도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 금속기:
    • 청동기: 동검(銅劍), 동모(銅鉾), 동과(銅戈) 등의 무기류와 동탁(銅鐸), 동경(銅鏡) 등의 제기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청동기는 주로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철기: 철제 농기구(낫, 괭이날 등), 공구(도끼, 자귀 등), 무기(칼, 창 등)가 제작되어 실생활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철기의 보급은 농업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 직물 기술: 원시적인 직조 기술이 발달하여 삼베나 명주 등의 옷감을 생산했습니다. 방추차나 직조 도구 등이 발견됩니다.

주거와 취락

야요이 시대의 주거 형태는 조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수혈 주거(움집)가 일반적이었으나, 점차 지상 가옥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움집은 평면 형태가 원형에서 방형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이며, 바닥 면적이 넓어지고 구조도 발달했습니다.

취락은 농경에 유리한 하천 유역이나 평야 지대에 형성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소규모였으나 점차 인구가 증가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방어 시설을 갖춘 환호 취락(環濠集落)이 등장했습니다. 요시노가리 유적과 같이 대규모 환호 취락은 망루, 목책, 역 V자형 해자 등 복잡한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어, 당시 사회의 긴장 관계와 집단 간의 경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줍니다. 취락 내부에는 주거 공간 외에도 공동 작업장, 창고, 제사 공간 등이 분화되어 있었습니다.

묘제 (墓制)

야요이 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나타나 사회 계층화를 반영합니다.

  • 토광묘(土壙墓):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매장하는 단순한 형태의 무덤입니다.
  • 옹관묘(甕棺墓): 대형 토기 두 개를 맞붙여 관으로 사용한 무덤으로, 주로 규슈 북부 지역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 지석묘(支石墓): 한반도의 고인돌과 유사한 형태로, 북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 사각형의 봉분 주위에 도랑을 두른 형태로,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이후 고훈 시대 고분의 원형이 되기도 합니다.
  • 분구묘(墳丘墓): 흙을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든 무덤으로, 규모가 큰 것은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부장품으로는 동경, 구슬, 철제 무기 등이 발견됩니다.

이러한 묘제의 다양성과 부장품의 차이는 야요이 사회 내에 이미 신분과 권력의 차이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대표적 유적

일본 각지에는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 요시노가리 유적 (吉野ヶ里遺跡, 사가현): 일본 최대 규모의 환호 취락 유적으로, 야요이 시대 전 기간에 걸친 변화상을 보여줍니다. 망루, 대형 건물터, 분구묘,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사회 구조와 생활 모습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 이타즈케 유적 (板付遺跡, 후쿠오카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논농사 유적 중 하나로, 야요이 시대 초기의 농경 문화를 보여줍니다.
  • 도로 유적 (登呂遺跡, 시즈오카현): 야요이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농촌 취락 유적으로, 논과 수로, 주거지, 창고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가라코·가기 유적 (唐古・鍵遺跡, 나라현): 긴키 지방의 대표적인 대규모 환호 취락으로, 청동기 제작 공방 흔적과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 고진다니 유적 (荒神谷遺跡, 시마네현): 다량의 동검(358자루)과 동탁(6점), 동모(16자루)가 한꺼번에 매납된 상태로 발견되어 야요이 시대 청동기 제사와 관련된 중요한 유적입니다.
  • 가모이와쿠라 유적 (加茂岩倉遺跡, 시마네현): 일본 최다인 39점의 동탁이 매납된 상태로 발견된 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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