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센고쿠 시대 (戦国時代)
센고쿠 시대 (戦国時代)
개요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15세기 후반 ~ 16세기 후반)는 일본 역사에서 무로마치 막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전국의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들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여 서로 패권을 다투던 약 1세기에 걸친 내란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닌의 난(応仁の乱, 1467-1477) 발발 이후부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1603년 에도 막부(江戸幕府)를 세우고 전국 통일을 완성하기까지의 기간을 지칭합니다. 이 시대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실력주의가 팽배했던 하극상(下克上)의 시대이자, 끊임없는 전란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태동한 역동적인 시기였습니다.
시대적 배경 및 특징
-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 오닌의 난을 계기로 쇼군의 권위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막부의 통제력은 교토와 그 주변 지역에 국한되었습니다.
- 슈고 다이묘의 센고쿠 다이묘화: 각지의 슈고 다이묘들은 점차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지(分国)를 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로 변모했습니다. 이들은 영지 내에서 독자적인 법률인 분국법(分国法)을 제정하고,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며 세력 확장을 꾀했습니다.
- 하극상(下克上)의 풍조: 신분이 낮은 자가 실력으로 상급자를 몰아내고 그 지위를 차지하는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가신의 주군 축출, 농민 봉기(잇키, 一揆)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 끊임없는 전란: 센고쿠 다이묘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는 성곽 건축 기술, 전술, 무기 등의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 조총의 전래와 영향: 1543년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조총(鉄砲)이 전래되면서 전투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 부대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여 군사적 우위를 점했습니다.
주요 센고쿠 다이묘와 통일 과정
수많은 센고쿠 다이묘들이 각축을 벌였으나, 점차 강력한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되었습니다. 전국 통일의 기반을 닦고 이를 계승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물 | 주요 업적 및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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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 오와리(尾張)의 다이묘로 시작하여 '천하포무(天下布武)'를 내걸고 통일 사업을 추진. 조총의 적극적 활용, 라쿠이치라쿠자(楽市楽座)를 통한 상업 진흥, 관소 철폐 등 혁신적인 정책을 시행.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사망. |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 노부나가의 가신 출신으로, 노부나가 사후 그의 통일 사업을 계승. 시코쿠, 규슈, 간토 등을 정벌하여 전국 통일을 거의 완성. 태합검지(太閤検地)와 가타나가리(刀狩)를 실시하여 지배 체제를 확립. 임진왜란(壬辰倭乱, 일본명 분로쿠·게이초의 역)을 일으킴. |
도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 | 미카와(三河)의 다이묘로 시작하여 노부나가, 히데요시와 동맹 또는 복속 관계를 유지하며 세력을 키움.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1600년)에서 승리하여 패권을 장악. 1603년 에도 막부를 열고 전국을 통일하여 센고쿠 시대 종식. |
이 외에도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 등 수많은 개성 강한 다이묘들이 각지에서 활약했습니다.
사회와 경제
- 성하촌(城下町)의 발달: 센고쿠 다이묘들은 거점 성(城) 주변에 가신들과 상공업자들을 모아 거주시키는 성하촌을 건설했습니다. 이는 정치, 군사, 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 상공업의 성장: 전란 중에도 상업 활동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전국적인 유통망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자치 도시인 사카이(堺), 하카타(博多) 등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라쿠이치라쿠자(楽市楽座)와 같은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도 시행되었습니다.
- 광산 개발: 금, 은 등의 광산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다이묘들의 재정 기반이 되었습니다.
- 농촌의 변화: 농민들은 자치 조직인 '소(惣)'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다이묘에게 저항하거나 협력했습니다. 태합검지를 통해 토지 소유 관계가 명확해지고, 병농분리(兵農分離)가 진행되었습니다.
문화
센고쿠 시대의 문화는 전란의 영향으로 실용적이고 힘찬 특성을 보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했습니다.
- 성곽 건축: 방어와 과시를 위한 웅장한 성곽 건축이 발달했습니다. (예: 아즈치성, 오사카성)
- 다도(茶道)의 유행: 무사들 사이에서 정신 수양과 사교의 수단으로 다도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센노 리큐(千利休)에 의해 와비차(侘茶)가 완성되었습니다.
- 가노파(狩野派) 회화: 성곽 내부를 장식하는 장벽화(障壁画)가 발달했으며, 가노파 화가들이 활약했습니다.
- 남만 문화(南蛮文化)의 영향: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상인 및 선교사와의 교류를 통해 서양 문물(조총, 시계, 유리, 빵 등)과 기독교가 전래되었습니다. 이를 '남만 문화'라고 하며, 일부 다이묘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기리시탄 다이묘, 切支丹大名)
시대의 종결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 사업을 거쳐,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에도(현재의 도쿄)에 막부를 열었습니다. 이후 1615년 오사카 전투(大坂の陣)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면서 일본은 약 260년간 지속되는 비교적 안정된 에도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로써 기나긴 센고쿠 시대의 혼란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