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로마치 막부 (室町幕府)
무로마치 막부 (室町幕府)
개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1336년 또는 1338년 ~ 1573년)는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교토(京都)에 세운 일본의 두 번째 무사 정권입니다. 막부의 청사가 교토의 무로마치(室町)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으며,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라고도 불립니다. 이 시대를 무로마치 시대라고 하며, 약 24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는 초기 남북조 시대의 혼란, 중기의 안정과 문화 발전, 후기의 전국 시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성립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은 천황 중심의 겐무 신정(建武の新政)을 실시하려 했으나 무사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이에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겐무 정권에 반기를 들고 1336년 교토를 장악, 고묘 천황(光明天皇)을 옹립하여 북조(北朝)를 세웠습니다. 고다이고 천황은 요시노(吉野)로 피신하여 남조(南朝)를 유지하면서, 약 60년간의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1336-1392)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카우지는 1338년 북조로부터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으로 임명되어 무로마치 막부를 공식적으로 열었습니다. 이후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 대에 이르러 1392년 남북조가 통일되면서 막부의 지배 체제가 안정되었습니다.
정치
무로마치 막부의 정치 구조는 가마쿠라 막부와 유사한 점도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습니다.
- 쇼군 (将軍): 막부의 최고 권력자였으나, 그 권력은 시기에 따라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초기 쇼군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도 했으나, 점차 유력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 간레이 (管領): 쇼군을 보좌하는 최고 정무직으로, 주로 아시카가 씨의 유력 분가인 시바(斯波) 씨, 호소카와(細川) 씨, 하타케야마(畠山) 씨가 교대로 맡았습니다. 이들 3가문을 산칸레이(三管領)라고 합니다.
- 사무라이도코로 (侍所): 군사, 경찰 업무 및 교토 시내의 치안을 담당. 장관인 소시(所司)는 주로 야마나(山名) 씨, 아카마쓰(赤松) 씨, 잇시키(一色) 씨, 교고쿠(京極) 씨 등 시시키(四職) 가문이 맡았습니다.
- 슈고 다이묘 (守護大名): 가마쿠라 시대의 슈고(守護)가 점차 해당 지역에서 강력한 영주(다이묘)로 성장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막부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때로는 쇼군의 권력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막부는 슈고 다이묘들의 연합 정권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습니다.
- 교토 부치 (京都扶持): 막부는 슈고 다이묘들에게 교토에 머무르며 정무에 참여하도록 하는 교토 부치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는 가마쿠라 막부와 달리 교토에 위치하여 조정과의 관계가 밀접했으나, 쇼군의 권력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했습니다. 특히 15세기 중반 이후에는 쇼군 후계자 문제와 유력 다이묘들 간의 대립으로 인해 막부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주요 사건
시기/연도 | 사건명 | 내용 |
---|---|---|
1336년 ~ 1392년 | 남북조 시대 | 교토의 북조와 요시노의 남조로 조정이 분열되어 대립.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통일. |
1392년 | 남북조 통일 |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남조를 흡수하여 통일 달성. 막부의 전성기 마련. |
1401년 | 감합 무역 시작 |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명나라와 국교를 맺고 감합(勘合)이라는 무역 허가증을 이용한 공식 무역 시작. |
1428년 | 쇼초의 도잇키(토일규, 正長の土一揆) | 최초의 대규모 농민 봉기. 이후 각지에서 잇키(一揆)가 빈번하게 발생. |
1467년 ~ 1477년 | 오닌의 난(応仁の乱) | 쇼군 후계자 문제와 슈고 다이묘 가문의 내부 분쟁이 결합되어 발생한 대규모 내란. 교토가 황폐화되고 막부의 권위가 급격히 실추되어 전국 시대의 서막을 열었음. |
1485년 | 야마시로노쿠니 잇키(山城国一揆) | 야마시로 국에서 고쿠진(国人)과 농민들이 슈고 다이묘 세력을 축출하고 8년간 자치 운영. |
사회와 경제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 농업 발달: 이모작(二毛作)이 널리 보급되고 수차(水車) 등 관개 시설이 발달하여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었습니다. 밭농사에서는 보리, 콩, 조 등이 재배되었고, 차(茶), 삼(麻), 닥나무(楮), 쪽(藍) 등 상품 작물 재배도 활발해졌습니다.
- 수공업 발달: 각지에 특산물이 생겨나고, 견직물(교토 니시진 등), 도자기, 주조, 제지, 금속 가공 등의 수공업이 발달했습니다.
- 상업과 도시의 성장: 농업 및 수공업 생산력 향상을 바탕으로 상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정기시(定期市)가 늘어나고, 도매상인 도이야(問屋)와 운송업자인 바샤쿠(馬借)·차차쿠(車借) 등이 활동했습니다. 교토, 사카이(堺), 하카타(博多) 등은 상업 중심지로 크게 번영했으며, 특히 사카이는 자치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 좌(座)의 발달: 상공업자들은 동업 조합인 '좌(座)'를 결성하여 귀족, 사찰, 막부 등으로부터 특권을 얻어 영업을 독점하기도 했습니다.
- 화폐 경제의 진전: 명나라에서 수입된 동전(영락통보 등)이 널리 유통되었고, 자체적인 주전도 시도되었습니다.
- 잇키(一揆)의 발생: 농민들은 자치 조직인 소(惣)를 결성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 했으며,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저항하여 도잇키(토일규, 土一揆)와 같은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또한, 고쿠진들이 연합한 고쿠진 잇키(国人一揆)나 특정 종교 집단의 잇코 잇키(一向一揆)도 발생하여 사회 변동을 심화시켰습니다.
문화
무로마치 시대는 중앙의 귀족 문화와 무가 문화, 그리고 지방 문화와 서민 문화가 융합되면서 독특하고 다채로운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선종(禅宗)의 영향이 컸습니다.
- 기타야마 문화 (北山文化): (14세기 말 ~ 15세기 초)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시대를 중심으로 교토의 기타야마(北山) 지역에서 번성한 문화. 귀족 문화와 무가 문화가 융합되었으며, 명나라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금각(金閣, 로쿠온지)이 있으며, 노(能)와 교겐(狂言)이 발전했습니다.
- 히가시야마 문화 (東山文化): (15세기 후반 ~ 16세기 초)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 시대를 중심으로 교토의 히가시야마(東山) 지역에서 발달한 문화. 선종의 영향을 받아 간소하고 유현(幽玄)한 미의식을 중시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은각(銀閣, 지쇼지)이 있으며, 서원조(書院造) 건축 양식이 확립되었습니다. 또한 다도(茶道), 화도(華道), 수묵화(水墨画), 정원(가레산스이, 枯山水) 등이 발달하여 오늘날 일본 전통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서민 문화의 성장: 오토기조시(御伽草子)와 같은 서민 문학이 등장하고, 마쓰리(祭り) 등이 활발해지면서 서민들의 문화 참여가 확대되었습니다.
쇠퇴와 전국 시대 돌입
무로마치 막부는 오닌의 난(1467-1477)을 기점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쇼군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슈고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센고쿠 다이묘, 戦国大名)으로 성장하여 서로 패권을 다투는 전국 시대(戦国時代)로 돌입하게 됩니다. 막부는 명목상으로는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통치력은 거의 상실했습니다.
결국 1573년,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교토에서 추방되면서 무로마치 막부는 공식적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이로써 약 100년간 이어질 전국 시대의 혼란이 본격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