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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헤이안 시대 (平安時代)

SBP 2025. 6. 2. 14:00
일본 헤이안 시대

개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へいあんじだい)는 일본 역사에서 794년 간무 천황(桓武天皇)이 수도를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로 옮긴 후부터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성립되는 1185년(또는 1192년)까지 약 390년간의 시기를 말합니다. '헤이안'이라는 이름은 수도였던 헤이안쿄에서 유래했으며,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 시대는 초기에는 율령 정치가 유지되었으나, 점차 후지와라(藤原) 가문을 중심으로 한 섭관 정치(摂関政治)와 상황(上皇)이 실권을 쥐는 인세이(院政)가 전개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견당사 파견 중단 이후 독자적인 일본 문화, 즉 국풍 문화(国風文化)가 크게 발달하여 가나 문자의 발명, 와카(和歌)의 융성, 모노가타리(物語) 문학의 등장 등 일본 고유의 세련된 귀족 문화가 꽃피웠습니다.

시기

헤이안 시대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전기: 794년 (헤이안쿄 천도) ~ 9세기 말 (견당사 폐지 등)
  • 중기: 10세기 초 ~ 11세기 중반 (후지와라씨 섭관 정치 최성기, 국풍 문화 융성)
  • 후기: 11세기 후반 ~ 1185년 (인세이 시기, 무사 계급의 대두, 겐페이 전쟁)

이 시대는 일본 고대 율령 국가가 변질되고 중세 봉건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닙니다.

주요 특징

  • 헤이안쿄(平安京) 천도: 새로운 수도 건설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했습니다.
  • 후지와라씨의 섭관 정치(摂関政治): 후지와라 가문이 천황의 외척으로서 섭정(摂政)과 관백(関白)의 지위를 독점하며 장기간 정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 인세이(院政): 천황이 양위한 후 상황(上皇)이 되어 정치적 실권을 행사하는 형태로, 후지와라씨의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강화를 시도했습니다.
  • 국풍 문화(国風文化)의 발달: 견당사 파견 중지(894년) 이후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가 크게 융성했습니다. 가나 문자 발명, 와카, 모노가타리 문학, 야마토에(大和絵) 등이 대표적입니다.
  • 장원(荘園)제의 발달: 귀족과 사사(寺社)들이 토지를 사유화하면서 공지공민제의 율령 체제가 붕괴되고 장원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무사 계급(武士階級)의 대두: 지방의 치안 유지나 장원 관리 과정에서 무장한 계층이 등장하여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이는 이후 막부 정치의 기반이 됩니다.
  • 밀교(密教)와 정토교(浄土教)의 융성: 사이초(最澄)의 천태종(天台宗)과 구카이(空海)의 진언종(真言宗) 등 밀교가 귀족 사회에 확산되었고, 말법 사상(末法思想)의 영향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하여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정토 신앙이 널리 퍼졌습니다.

정치 변천

헤이안 시대의 정치는 크게 세 단계로 변화했습니다.

  1. 초기 (율령 정치의 지속과 변용): 간무 천황은 강력한 친정(親政)을 통해 율령 체제를 재건하려 했으나, 점차 관료제는 문벌화되고 특정 가문이 요직을 차지하게 됩니다.
  2. 중기 (섭관 정치): 9세기 후반부터 후지와라씨가 어린 천황을 대신해 정치하는 섭정, 성인 천황을 보좌하며 사실상 국정을 총괄하는 관백의 지위를 번갈아 맡으며 약 200년간 정치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와 그의 아들 요리미치(頼通)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 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 후기 (인세이): 1086년 시라카와 천황(白河天皇)이 아들에게 양위한 후 상황이 되어 인(院, 상황의 거처)에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인세이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후지와라씨의 섭관 정치로부터 실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으나, 또 다른 형태의 권력 집중을 낳기도 했습니다. 인세이는 가마쿠라 막부 성립 이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은 약화되었고, 이는 장원제의 발달과 무사 계급의 성장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국풍 문화 (国風文化)

10세기 이후 견당사가 폐지되면서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줄어들고, 일본의 풍토와 일본인의 정서에 맞는 고유한 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를 국풍 문화라고 합니다. 주로 헤이안쿄의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 가나 문자(仮名文字)의 발명과 보급: 한자를 간략화한 히라가나(平仮名)와 한자의 일부를 따온 가타카나(片仮名)가 만들어져 일본어를 표기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여성 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와카(和歌)의 융성: 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와카가 크게 유행했으며, 최초의 칙찬 와카집(勅撰和歌集)인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905년)가 편찬되었습니다.
  • 모노가타리(物語) 문학의 발달: 가나 문자를 사용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를 다룬 산문 문학이 발달했습니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竹取物語)』, 『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語)』 등이 초기 작품이며,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헤이안 귀족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 여성 문학의 활약: 세이 쇼나곤(清少納言)의 수필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 등 여성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 야마토에(大和絵): 중국풍의 가라에(唐絵)와 대비되는 일본적인 주제와 양식의 그림이 발달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絵巻物) 형식이 유행했으며, 사계절의 풍경이나 문학 작품의 장면 등을 그렸습니다.
  • 건축과 공예: 귀족들의 주택 양식인 신덴즈쿠리(寝殿造)가 발달했으며, 섬세하고 우아한 공예품들이 제작되었습니다.
  • 복식: 주니히토에(十二単)와 같이 화려하고 다층적인 귀족 여성의 복식이 발달했습니다.

문학

헤이안 시대는 일본 문학사에서 황금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가나 문자의 발달은 여성들을 포함한 폭넓은 계층의 문학 활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와카(和歌):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등이 편찬한 『고킨와카슈』를 필두로 많은 와카집이 만들어졌으며, 사랑, 자연, 인생무상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 모노가타리(物語):
    • 전기 모노가타리: 『다케토리 모노가타리』(가구야 공주 이야기), 『우쓰호 모노가타리(宇津保物語)』, 『오치쿠보 모노가타리(落窪物語)』 등
    • 가몬(歌物語): 와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세 모노가타리』
    • 쓰쿠리모노가타리(作り物語):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는 주인공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삶과 연애를 통해 헤이안 귀족 사회의 이상과 그늘을 그린 장편 소설로, 심리 묘사가 뛰어나 세계 문학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 수필(日記文学・随筆):
    • 기노 쓰라유키의 『도사 일기(土佐日記)』 (남성이 여성인 척하며 가나로 쓴 일기)
    •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 (궁정 생활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감상을 담은 수필)
    • 무라사키 시키부의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 『가게로 일기(蜻蛉日記)』, 『이즈미 시키부 일기(和泉式部日記)』, 『사라시나 일기(更級日記)』 등 여성들의 자전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설화 문학(説話文学): 불교 설화나 민간 전승 등을 모은 『곤자쿠 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등이 편찬되었습니다.

종교

헤이안 시대에는 불교가 더욱 발전하고 다양화되었습니다.

  • 밀교(密教)의 전래와 융성:
    • 천태종(天台宗): 9세기 초 사이초(最澄)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히에이산(比叡山)에 엔랴쿠지(延暦寺)를 세우고 개창했습니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현교와 밀교를 아우르며 국가 진호와 귀족들의 신앙 대상이 되었습니다.
    • 진언종(真言宗): 사이초와 함께 입당했던 구카이(空海, 홍법대사弘法大師)가 고야산(高野山)에 곤고부지(金剛峯寺)를 세우고 개창했습니다.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는 순수 밀교로서, 주술적인 힘으로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귀족 사회에 깊이 침투했습니다.
  • 정토교(浄土教)의 확산: 10세기 중반 이후 사회 불안과 말법 사상의 영향으로 내세의 구원을 바라는 신앙이 확산되었습니다. 구야(空也) 등의 승려들이 민간에 아미타불 신앙을 전파했으며, 겐신(源信)은 『왕생요집(往生要集)』을 저술하여 정토 사상을 체계화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을 외우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귀족뿐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도 널리 퍼졌습니다.
  • 신불 습합(神仏習合): 일본 고유의 신토(神道) 신앙과 불교가 융합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신사 안에 신궁사(神宮寺)가 세워지거나 부처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説)이 등장했습니다.

사회와 경제

  • 율령 체제의 붕괴와 장원제의 발달: 공지공민 원칙에 기반한 반전수수제가 무너지면서 귀족, 사원, 신사 등이 개간하거나 기증받은 토지를 사유지인 장원(荘園)으로 만들어나갔습니다. 장원은 점차 불수(不輸, 세금 면제)·불입(不入, 관리의 출입 금지)의 특권을 획득하며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경제 단위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은 악화되고 중앙 정부의 지방 지배력은 약화되었습니다.
  • 지방 정치의 문란과 치안 악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国司, 고쿠시)들의 수탈이 심해지고,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며 중앙 정부의 통제가 느슨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도적떼가 횡행하는 등 치안이 악화되었습니다.
  • 상업과 교통의 발달: 헤이안쿄는 정치·문화의 중심지이자 소비 도시로서 성장했으며, 지방의 산물을 교역하는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주요 도로망이 정비되었으나, 여전히 교통은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 화폐 경제의 미숙: 조정에서 동전을 주조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못했고, 주로 쌀이나 비단 등이 교환의 매개로 사용되었습니다.

무사 계급의 대두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무사(武士, 사무라이) 계급이 점차 중요한 사회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 발생 배경:
    • 지방의 치안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장원 영주나 지방 호족들이 자체적으로 무장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후예나 몰락한 귀족들이 지방에 정착하여 무사단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 성장 과정:
    • 초기에는 주로 지방의 반란 진압이나 귀족들 간의 분쟁 해결에 동원되었습니다.
    • 점차 무사들은 무예를 연마하고 주종 관계를 맺으며 단결력을 강화했습니다. 대표적인 무사 가문으로는 간토(関東) 지방을 기반으로 한 겐지(源氏, 미나모토씨)와 이세(伊勢)·간토 지방을 기반으로 한 헤이시(平氏, 다이라씨)가 있었습니다.
    • 인세이 시기에는 상황이 자신의 경호를 위해 북면 무사(北面の武士) 등을 두면서 무사들의 정치적 지위가 향상되었습니다.
  • 겐페이 전쟁(源平合戦): 12세기 후반, 겐지와 헤이시 두 무사 가문은 조정의 권력 다툼에 깊이 관여하면서 호겐의 난(保元の乱, 1156년)과 헤이지의 난(平治の乱, 1159년)을 거쳐 헤이시 정권이 수립됩니다. 그러나 헤이시 정권의 독재에 대한 반발로 전국 각지에서 겐지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고, 이어진 겐페이 전쟁(지쇼·주에이의 난, 1180년~1185년)에서 겐지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대표적 유적 및 건축

헤이안 시대의 귀족 문화와 종교 건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과 건축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헤이안쿄 유적 (平安京跡, 교토부 교토시): 현재 교토 시가지 지하에 남아 있는 헤이안 시대 수도의 흔적입니다. 라조몬(羅城門) 터, 다이다이리(大内裏) 터 등이 있습니다.
  • 뵤도인 봉황당 (平等院鳳凰堂, 교토부 우지시):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3년에 건립한 아미타당으로, 연못에 비친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편 것 같다 하여 봉황당이라 불립니다. 정토교 건축의 대표작이며,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좌상과 운중공양보살상, 벽화 등이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 고잔지 세키스이인 (高山寺石水院, 교토부 교토시): 헤이안 시대 말기 또는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신덴즈쿠리 양식을 보여주는 주택 건축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수희화(鳥獣戯画)를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 주손지 곤지키도 (中尊寺金色堂, 이와테현 히라이즈미정): 12세기 초 오슈 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가 건립한 아미타당으로, 건물 전체가 금박으로 덮여 있고 내부는 자개와 상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히라이즈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 무로지 오층탑 (室生寺五重塔, 나라현 우다시): 헤이안 시대 초기에 건립된 목조 오층탑으로, 일본에서 가장 작은 옥외 오층탑 중 하나이며 국보입니다. 여성의 출입을 허용했던 사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엔랴쿠지 (延暦寺, 시가현 오쓰시) 및 곤고부지 (金剛峯寺, 와카야마현 고야정): 각각 천태종과 진언종의 총본산으로, 헤이안 시대 불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 및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