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역사

일본 고훈 시대(古墳時代)

SBP 2025. 6. 2. 13:54

 

개요

고훈 시대(古墳時代, こふんじだい)는 일본 역사에서 야요이 시대에 이어지는 시대로, 대략 3세기 중반에서 7세기 말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대는 지배층의 무덤인 거대한 봉분, 즉 '고훈(古墳)'이 대량으로 축조된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고훈의 형태와 부장품은 당시 사회 구조, 정치 체제, 문화, 기술 수준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시기에는 야마토(大和)를 중심으로 강력한 정치 세력, 즉 야마토 정권이 등장하여 점차 일본 열도 내에서의 지배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시기

고훈 시대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전기: 3세기 중반 ~ 4세기 말
  • 중기: 5세기 초 ~ 5세기 말
  • 후기: 6세기 초 ~ 7세기 말 (아스카 시대와 일부 겹치기도 함)

고훈 시대의 시작은 야요이 시대의 분구묘에서 발전한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이 등장하는 시점으로, 종료는 불교의 수용과 율령 국가 체제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는 아스카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봅니다. 특히 6세기 말 이후로는 대형 전방후원분의 축조가 점차 줄어들고 불교 사원의 건립이 활발해지는 등 사회 변화가 뚜렷해집니다.

주요 특징

  • 고훈의 축조: 열쇠 구멍 모양의 전방후원분을 비롯하여 원분(円墳), 방분(方墳) 등 다양한 형태의 거대 고분이 축조되었습니다. 이는 강력한 왕권과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 하니와(埴輪): 고분 주위나 봉분 위에 세워진 원통형 또는 형상(인물, 동물, 집, 기물 등) 토제품으로, 매장 의례나 고분 수호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 야마토 정권의 성립과 발전: 긴키(近畿) 지방의 야마토 세력이 점차 주변 지역을 통합하며 강력한 정치 연합체를 형성했습니다. '오키미(大王)'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 금속기의 발달과 보급: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더욱 발달하고 널리 보급되어 농업 생산력과 군사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금동 장신구, 마구(馬具) 등도 발달했습니다.
  • 스에키(須恵器) 토기: 한반도에서 전래된 기술로 제작된 회색의 단단한 도질 토기가 등장하여 이전의 하지키(土師器)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 대륙 문화의 수용: 한반도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및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기술, 문자, 유교, 불교 등이 전래되었습니다.
  • 신분제 사회 심화: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씨성 제도(氏姓制度)를 통해 신분과 직위가 세습되었습니다.

고분 (古墳)

고훈 시대의 상징인 고분은 그 형태와 규모, 부장품에서 시대적 변화와 지역적 특색을 보여줍니다.

  •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앞쪽은 사다리꼴(前方部), 뒤쪽은 원형(後円部)인 열쇠 구멍 모양의 고분으로, 고훈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형태입니다. 주로 대왕이나 유력 호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그 크기는 수십 미터에서 최대 수백 미터에 이릅니다.
  • 원분(円墳) 및 방분(方墳): 원형 또는 사각형의 봉분을 가진 고분으로, 전방후원분보다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으며 지방 호족이나 일반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입니다.
  • 부장품: 고분 내부의 석실이나 목관에는 동경(銅鏡), 옥제품(曲玉, 管玉 등), 무기(검, 창, 갑옷), 마구, 농공구, 토기 등 다양한 부장품이 묻혔습니다. 이러한 부장품은 피장자의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냅니다.

하니와 (埴輪)

하니와는 고분 시대의 독특한 토제품으로, 고분의 봉분 위나 주위에 열을 지어 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원통형 하니와가 등장했으나, 점차 집, 기물(방패, 갑옷 등), 동물(말, 새, 개 등), 인물(무사, 무녀, 농부 등)을 형상화한 형상 하니와가 제작되었습니다.

하니와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고분의 성역을 표시하거나, 사악한 것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는 주술적 역할, 혹은 매장 의례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피장자의 생전 모습을 나타내는 등의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니와는 당시의 복식, 무기, 생활 도구, 풍습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야마토 정권 (大和政権)

고훈 시대에는 긴키 지방의 야마토(현재의 나라현 일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정치 세력, 즉 야마토 정권이 형성되어 발전했습니다. 야마토 정권의 수장은 '오키미(大王)'라 불렸으며, 점차 주변의 호족들을 복속시키거나 연합하여 일본 열도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전방후원분을 축조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했으며, 씨성 제도(氏姓制度)를 통해 지배 체제를 조직화했습니다. 씨(氏)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동족 집단이며, 성(姓)은 조정 내에서의 지위나 직무를 나타내는 칭호였습니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 및 중국 대륙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습니다.

5세기경에는 왜의 5왕(倭の五王)이 중국 남조에 사신을 파견하여 책봉을 받는 등 국제적인 관계도 맺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야마토 정권은 점차 고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갔으며, 이후 아스카 시대의 율령 국가 형성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문화와 기술

  • 토기: 야요이 시대의 하지키(土師器)가 계속 사용되면서, 5세기경에는 한반도 가야 지역의 기술이 전래되어 보다 단단하고 회청색을 띠는 스에키(須恵器)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스에키는 주로 제사용기나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며,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졌습니다.
  • 금속 공예: 철제 무기(칼, 갑옷 등)와 농기구가 더욱 정교해지고 대량 생산되었습니다. 금이나 은을 사용한 장신구, 마구류(안장, 등자 등) 등의 금속 공예 기술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특히 금동관, 귀걸이, 허리띠 장식 등은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이었습니다.
  • 마구의 도입과 기마술: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로부터 말과 함께 마구가 전래되면서 기마 풍습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군사력 강화와 교통, 통신 발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문자의 사용: 한반도를 통해 한자가 전래되어 일부 지배층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외교 문서나 물품 표기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기록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나리야마 고분 출토 철검 명문이나 에다후나야마 고분 출토 대도 명문 등은 당시 문자 사용의 증거입니다.
  • 건축 기술: 거대한 고분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토목 및 건축 기술의 발달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석실의 구조, 석재 가공 기술 등에서 진전을 보였습니다.

대외 교류

고훈 시대는 한반도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및 가야, 그리고 중국 대륙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주로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 문물 및 기술 도입: 한반도로부터 철기 제작 기술, 스에키 토기 제작 기술, 기마술, 양잠 기술, 한자 등이 전래되어 일본 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백제와 가야는 야마토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기술자와 문물을 전달했습니다.
  • 도래인(渡來人)의 역할: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은 선진 기술과 지식을 일본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야마토 정권 하에서 기술 관료나 학자 등으로 활동하며 고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 정치·군사적 관계: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정세에 깊이 관여하며, 때로는 군사적 지원을 하거나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왜가 신라를 침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왜의 5왕은 중국 남조에 조공하고 한반도 남부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 무역: 한반도 및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철, 동, 견직물, 서적 등 다양한 물품이 오갔습니다.

이러한 대외 교류는 고훈 시대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특히 불교 전래(공식적으로는 6세기 중반)는 이후 일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표적 고분군

일본 각지에는 수많은 고분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규모가 크고 중요한 고분들이 모여 있는 고분군들이 있습니다.

  • 모즈·후루이치 고분군 (百舌鳥・古市古墳群, 오사카부): 다이센 고분(닌토쿠 천황릉 추정)을 포함한 일본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입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야마토 정권 최성기의 권력을 상징합니다.
  • 사이토바루 고분군 (西都原古墳群, 미야자키현): 300기가 넘는 다양한 형태와 시기의 고분이 밀집된 일본 최대급의 고분군 중 하나입니다.
  • 이와토야마 고분 (岩戸山古墳, 후쿠오카현): 규슈 북부에서 가장 큰 전방후원분으로, 6세기 초 야마토 정권에 저항했던 이와이(磐井)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고분 주변에 석인·석마(石人石馬)가 배치된 것이 특징입니다.
  • 이나리야마 고분 (稲荷山古墳, 사이타마현): '신카이(辛亥)년' 명문이 새겨진 철검이 출토되어 야마토 정권의 지방 지배와 문자 사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 다카마쓰즈카 고분 (高松塚古墳, 나라현) 및 기토라 고분 (キトラ古墳, 나라현): 고훈 시대 후기 또는 아스카 시대 초기의 고분으로, 정교한 채색 벽화(사신도, 인물상, 천문도 등)가 발견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